붕당정치의 전개와 변질과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조선후기 정치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붕당정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붕당정치가 어떤식으로 전개가 되었는지 우선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붕당정치의 변질이 찾아왔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서 미리 알아야할 내용을 보겠습니다. 

- 예송논쟁이 전개 되었다. (이부분은 분량상 따로 진행할수도 있습니다.)

- 탕평정치가 시행되었다. (영조와 정조 시대)

- 세도 정치로 인해 조선이 휘청거리기 시작한다.(정조 사후)


이정도의 기본 요약을 익히시고 본격적인 붕당정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팔달문입니다.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그리며 지은 수원성의 문입니다.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서 지은성으로도 유명합니다. 


붕당정치의 전개와 변질


1. 붕당정치의 전개

#. 선조 

: 사림들은 세조때부터 정권을 잡아온 훈구잔제세력의 청산 문제와 인사권의 문제로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을 하였다.(동인우세) 

-->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분당 하였다.( 남인 우세) 

--> 남인과 북인의 분당 계기는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었다. 


#. 임진왜란 ~ 광해군 

: 북인의 집권 -->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 인조 반정으로 몰락하게 된다. 


#. 인조 ~ 효종 

: 서인과 남인은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면서 상호 비판적 공존 체제를 유지하였다. 


#. 현종

: 예송으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 위의 만화는 숙종때까지의 붕당에 관한 내용을 재밋게 표현한 것입니다. 내용을 조금 살펴 볼까요?

1. 붕당의 발생원인

: 선조에 이르러 사림세력들이 대거 등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화에서 처럼 관직(밥그릇)은 한정되어 있고 먹고 싶은 사람은 많다보니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편갈라 싸우다보니 붕당이 형성 되었습니다. 


2. 임진왜란 이후

: 임진왜란이후는 광해군이 집권한 시기인데 이때 광해군은 동인의 한갈래인 북인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멀뚱히 보고 있는 남인과 서인이 귀엽네요.


3. 인조반정 이후

: 광해군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이된 인조를 묘사한 그림이네요.

발 밑에 깔려있는 광해군과 북인이 안쓰럽습니다. 서인이 깔고 있는걸봐서 서인 주도의 정국이 되었고 남인이 함께 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4. 붕당정치의 변질

: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사사건건 편갈려서 싸우기만 하는데 이걸 붕당정치의 변질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현종때의 예송 논쟁을 들수 있습니다.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었지요.


5. 환국정치 feat 숙종

: 숙종은 왕권이 아주 강력한 왕이 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환국을 일으켜 일당전제화를 자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된것도 포인트입니다.

숙종때의 인물로는 장희빈이 유명하죠.


2. 영조와 정조의 탕평 정치.


 

 영조

정조 

 특징

 - 왕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강조하였다. 

: 탕평파 중심의 정국 운영을 하였다. 


  - 각 붕당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분하는 적극적 탕평책을 수용하였다. 

 - 소론과 남인 또한 중용하였다. 


 왕권 강화

(붕당세력의 약화)

 - 산림을 인정하지 않았다. 

 - 서원을 대폭 정리 하였다. 

 - 이조 전랑의 3사 관리 선발권과 후임자 천거권을 폐지하였다. ---> 후임 천거권은 정조 때 완전히 폐지됨

 

 - 초계문신제 : 유능한 인사 재교육

 - 규장각 : 왕실 도서관, 비서실, 과거 시험을 주관, 문신 교육을 담당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 --> 왕권의 군사적 기반 강화

 - 화성의 축조 : 사도 세자의 묘 이전, 상공인 유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도시로 육성

 - 수령의 권한 강화 : 향약에서 수령으로 권한이 넘어옴


 문물제도의 정비

 -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 사형수에 대한 엄격한 삼심제를 시행하였다. 

 - 속대전을 편찬 하였다. 

 - 통공 정책 시행

 - 대전 통편

- 정조의 초계문신제 

: 정조는 이 제도의 시행을 통해서 2가지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37세 이하의 연소한 문신들을 재교육함으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나아가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어 당파의 구분을 타파하길 원했다. 

그러나 후자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던것으로 여겨지며, 인재양성에는 일정한 기여를 한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탕평책에 관한 만화입니다. 

정말 만화는 엄청난 교육자제가 되는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을 이렇게 보기좋고 기억나기 쉽게 요약을 할수 있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면서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숙종의 탕평책 

: 숙종은 탕평책을 제시만 했지 위에서 설명했듯이 환국주도의 일당정치를 했습니다. 


2) 영조의 탕평책

: 영조는 강경파였던 노론에게는 펀치를 날리고 있습니다. 온건파인 남인과 소론은 고루 등용했습니다. 

: 균역법을 실시했는데 1필이라는 그림을 통해서 역이 1필만 낸다라는걸 표현했습니다. 

: 그리고 신문고를 이용했다는걸 깨알같이 그렸네요.


3) 정조의 탕평책

: 규장각 아래에서 공부하는 정조의 모습입니다. 상공업을 진흥시켰습니다.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상업을 활성화 시켰네요. 금난전권으로 인해서 육의전들만 물건을 팔았다는걸 그림으로 알수 있습니다. 

: 장용영을 설치해서 군사적 기반을 다졌으며 

: 서얼도 등용해서 서얼과 노비들이 감동 먹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익살스럽습니다. 

: 수원화성은 내작품이라고 하는 정약용도 볼수 있으며 거중기도 보입니다. 


3. 세도정치 

- 배경 

: 탕평 정치기 시기에(영조 와 정조) 권력의 대부분이 왕에게 집중되었다. 

--> 정조 사후에 외척들의 권력 행사(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 특징 

: 정치의 독재화 -> 붕당이나 탕평/반탕평파의 대립구도가 사라지고 소수 가문이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 고위직의 정치 독점 --> 비변사 기능의 강화, 언론직의 정치적 기능이 마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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