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와 측우기로본 조선 과학기술의 발달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조선 전기의 문화 마지막 시간입니다. 

조선전기의 과학기술과 그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과학발전의 대부분은 조선전기 세종대왕때 모두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전기시대에는 뛰어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보였지만 이런 흐름을 계속이어 나가지 못한것이 안타깝습니다. 

서론은 이정도로 하고 조선 전기의 문화 마지막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미리 알아야할 내용을 보겠습니다. 


1) 15세기에는 자주적 과학 기술이 발달하였다. 

2) 15세기에는 분청사기가 유명하며 16세기에는 백자가 유행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화 (하)

위의 사진은 천체관측 기구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린다.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사용 되어졌다. 

한국에는 조선 세종때에 도입되었으며, 현종10년쯤에 송이영이 만든것으로 현존하고 있는 혼천의 이다.


1. 과학기술의 발달

(대부분 세종대왕 때의 업적)

#. 천문기술의 발달은 왕권의 강화이다.?

- 세종 때의 과학기술 발달은 중국의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를 발달시키면서 백성들이나 여러 국낸정사에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발전이라고 볼수 있다. 

중국과도 비견될 조선의 건국의 정당성과 역사성에 힘을 보태기 위해 무언가 업적을 남기고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세종대왕의 여러업적들은 결국 성공해서 엄청난 문화와 과학발전을 이룩하였고 이는 새왕조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 측우기는 그 자체보다 측우기로 만들어낸 기록들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칠정산/ 농사직설 모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자주적/민족적인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업적이라고 볼수 있다. 


측우기는 조선시대에 강우량의 분포를 측정하던 기구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이다.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져서 전국에 보급, 시행하였다. 시대는 조선 세종때 만들어 졌으나 그의 아들인 문종의 주도하에 만들어 졌다. 

금영측우기만이 현재까지 남아 젼해지고 있으며 

정조때부터 고종때까지의 측우기를 통한 조선시대의 관측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참고 문헌 : 취키백과사전>



2. 건축과 예술

#. 해인사 장경판전 : 고려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 원각사지 10층석탑 : 탑골 공원에 있다. 


탑골공원에 위치한 원각사지10층석탑이다. 

탑골공원의 탑은 이탑을 말하는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보2호이다. 

외형이 경천사 10층 석탑과 상당히 유사하다. 

2000년도 즈음부터 외부손상이 심해져서 유리막으로 막아놓은 상태이다. 



오랜 세월동안 맨위의 3층은 무너져 내린채로 있었다. 

이를 1947년에 복원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복원전의 모습이다.



#. 15세기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다. 16세기에는 백자가 유명세를 떨쳤다. 

#. 15세기엔 왠지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나는 그림 유물이 많고 16세기엔 왠지 선비의 느낌이 나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15세기에 유행한 분청사기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화가인 안견의 그림이다.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산수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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