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군사제도의 변화(비변사와 속오군 5군영)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 왔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은 조선후기 군사제도의 변화를 알아보겠습니다.

들어가기전에 앞서서 미리 예습 잠깐 해보겠습니다. 

- 비변사 : 양란이후 ( 왜란과 호란) 조선 후기 핵심 정치 기구가 됩니다. 

- 왜란을 겪으면서 5군영과 지방군은 속오군 체제의 군사제도를 완성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옛 비변사의 터입니다. 

비석에도 새겨져 있듯이 비변사는 외적의 침입 때문에 만들어진 임시기구 였으나 

전시가 오래되자 결국은 국가 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곳이 되었다. 

중종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폐지 되었다. 

1. 정치 체제의 변화

- 양란을 거치면서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설치

 - 16세기 초 중동때 3포 왜란을 계기로 설치 되었다. 

 -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는 임시 회의 기구 

 기능 강화

 - 왜란 후 군사 뿐만 아니라 모든 정무를 총괄하는 최고 회의 기구화 도었다. 

 - 의정부 6조 중심의 행정체계의 유명무실화  

 폐지

 - 19세기 후반 흥선대원군이 폐지하게 된다. 

 -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 삼군부 부활

- 이렇게 3포 왜란을 계기로 만들어진 비변사는 고려때의 도병마사와 비슷한 기능을 하게 된다. 


- 3사의 언론기능이 변질된다.

: 초기의 3사의 언론기능은 사라지게 된다. 3사를 장악하게 된 붕당들은 자기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으로 이용되는 기구가 되었다. 


- 전랑의 변화

: 중하급 관리의 인사권 행사를 하던 전랑이 ---> 상대 세력 견제에 앞장서는걸로 바뀌었다. 


#. 이상의 내용을 정리를 하면 

: 양란을 계기로 비변사는 상설기구화 되면서 권력 독점을 위한 기구가 되었고

: 삼사는 언론기능을 상실하고 자당의 이익만 챙겼으며

: 전랑은 인사권을 통해 3사관리와 자천제로 자기당의 세력 부풀리기와 상대당의 견제만 힘썻다.




2. 조선 후기 군사 제도의 변화


#. 중앙군

- 5위에서 5군영 체제로의 변화를 꾀하였다. 

- 훈련도감은 직업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지방군 

- 영진군에서 속오군으로 변경되었다. 

- 속오군은 양반에서 노비까지 전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결국 양반의 거부로 상민과 노비만 남게되었다. 


#. 진관체제 -> 제승방략체제 --> 진관체제로 다시.

- 진관 체제는 축구로 비유하면 지역방어의 개념과 비슷하다. 각 지역이 스스로 삼삼오오 방어를 하는것이다. 

: 한곳이 뚫려도 다른곳으로 방어가능하며 지방의 특색을 잘 활용한 게릴라 전술등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군사의 수 자체는 적기 때문에 대군의 적에게 약하다. 


- 제승방략체제의 경우는 주변지역의 군사를 모두 모은 다음에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가 지휘하는 군사제도 이다. 

: 군사수가 많기때문에 대군에 유리하고 통치체재의 단일화로 지휘체계 전달이 빠르다.

: 한번 전투에서 패배했을때의 타격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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