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호란으로 바라본 조선의 외교


18강 조선의 외교 


들어가기 앞서서 미리 살펴보기 


1. 사대교린이란?

: 조선 초기의 외교 정책입니다.  큰 나라에게는 섬기고, 이웃나라에게는 동등한 입장으로 사귀어 안정을 도모한다는 말입니다. 


2.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 선조 --> 광해군 ---> 인조 이렇게 이어지는 왕들의 역사속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선조) ---> 임진왜란으로인한 전란 복구(광해군)와 명과 금나라 사이에서의 중립외교 ---> 병자호란 발발(인조)


#. 광해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때문에 폭군으로 몰려서 군으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군은 아닐지라도 명군은 틀림없는 광해군 , 개혁군주로서의 면모가 많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사담은 여기까지 공부 시작할께요 



영화 명량의 한장면입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정확히는 정유재란), 선조시대의 장수인 이순신장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1.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사대 : 명나라 

교린 : 여진족과 일본


#. 여진에 대한 강건책으로는 4군과 6진을 설치 하였다. 사민정책(새로 얻은 땅에 조선 백성을 옮겨 살게 하고)으로 국경지방을 개간하고, 토관제도(지역출신 관리를 임명)하여 민심을 잡았다. 


- 온건책으로 귀순 장려 정책을 펼쳤다.(관직과 토지의 수여), 무역소를 설치!!


#. 일본에 대한 강건책으로는 쓰시마 섬 토벌

온건책으로는 3포 개항, 제한된 무역을 허용하였다. 


2. 왜란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휴전기에 훈련도감(중앙군)을 설치 하였고, 속오군(지방군)을 설치 하였다. 

- 속오군은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배속되었다. 예비군적 성격이 강한 군대였다. 



3. 호란


#. 광해군의 중립외교

: 여진족의 후금 건국 --> 명나라에서 원군을 요청하였다. ---> 이에 강홍립을 도원수로 군대를 파견해서 명을 지원 ---> 적극적으로 명에게 도움을 하지 않고 관망의 자세를 취함 --> 강홍립의 항복 -->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 정책 유지


#. 인조 반정(친명 배금)

: 중립외교를 비판하며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임금으로 세움


#. 호란 발발 

: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발하게 된다. 인조는 삼전도 굴욕을 당하면서 엄청난 수치를 당하게 된다. 


#. 북벌론의 대두 

: 병자호란의 충격과 명의 멸망 -->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한 북벌 운동이 크게 전개 된다. 




같이 보면 좋은 EBS의 역사채널e를 걸어봅니다.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약5분 가량의 동영상이네요

다음시간에는 조선의 토지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