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전법과 직전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국사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공부야 늘하는거지만 업로드가 뜸했네요. 그럼 시작해볼께요!


20장 조선의 토지제


#. 시작하기 앞서 미리 살펴보고 갈께요(예습하기)


- 과전법 : 전, 현직 관리에게 수조권을 지급하다. 죽으면 반납이지만 일부 세습이 이어져갔다. 

--> 이 방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급할 땅이 부족해진다.(세습하기떄문에..)


- 직전법 : 세습으로 땅이 부족해지자 현직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 명종때에는 이 마저도 폐지 되었다. 


<드라마 정도전의 한장면이다.>


1. 전시과 와 과전법을 비교해보자.


#. 고려의 전시과는 [무엇을?] 전국 토지를 대상으로 [누구에게?]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수조권을 줬다. 


#. 조선의 과전법은 [무엇을?] 경기도 토지를 대상으로 [누구에게?] 전직 /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수조권을 줬다. 


#. 두 토지제도 모두 기본적으로는 세습이 금지되었으나 과전법에서는 수신전과/휼양전[각주:1] 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세습이 가능했다. 이는 후에 지급할 토지의 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2. 과전법의 변천


#. 과전법

: 전직 / 현직 관리에게 지급 + 세습가능 토지(수신전/휼양전) + 경기 지역 토지만 수조권을 계속해서 지급하였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른후 관리에게 지급할 토지의 부족으로 이어 졌다. 


#. 직전법

: 이를 고치고자 세조가 현직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고 + 세습가능 토지(수신전/휼양전)을 폐지하는 직전법을 발표하였다. 

--> 이는 관리들의 토지 소유 욕구를 더욱 높이게 되었고 ---> 이는 농민에 대한 착취로 이어졌다. 


#. 관수 관급제

: 농민에 대한 수탁이 점점 심해져 성종때는 국가가 농민에게 세금을 받아 다시 관리에게 주는 관수 관급제로 바뀌었다. 


#. 직전법의 폐지 

: 그러나 토지 부족은 여전하였고 명종때에는 직전의 지급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명종때 녹봉제를 전면 실시 하였다. 


그리고 직전법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직전법의 폐지는 관리들이 가지던 수조권의 소멸을 말한다. 이로써 국가는 농민과 토지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1. 수신전 : 과전법을 받는 자가 사망하여 과전을 부인에게 지급할 때는 수신전, 휼양전 : 부인도 사망하여 바로 자식에게 주거나 부인이 나중에 사망하여 다시 자식에게 수신전을 물려줄때는 휼양전이라고 불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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