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과 서원-조선전기의 문화
- 한국의 역사/근세
- 2015. 6. 17. 08:30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잠깐 오늘 알아볼 내용을 살펴 볼께요
크게는 역사서의 종류와 편찬목적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교육 시설에는 어떤것이 있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 15세기에는 자주적이고 민족적인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 서울에는 성균관, 지방에는 서원과 향교가 교육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의 초최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전경입니다.
조선전기의 문화(상편) 시작합니다 .
1. 15세기 vs 16세기
#. 역사서
: 일단 역사서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 고려사
: 기전체로 기록되었다. cf) 기전체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처음 쓰였다.
: 조선을 세우면서 앞의 시대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역성혁명을 통해 건국된 조선을 위한 정당성을 치켜세우기 위해 쓰여졌다.
- 동국통감
: 고조선에서 ~ 고려까지의 기록이 적혀 있다. 자주적 민족적 성향을 나타내는 기록서이다.
: 자주적 성향의 근거는 고조선, 즉 단군을 기록한데서 알수있다.
- 조선왕조실록
: 시간의 순서대로 적은 편년체로 기술되어 져있다.
: 춘추관에서 관리 감독하여 만들어 졌다.
#. 지리 부문
: 지리지의 편찬 목적은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 윤리 부문
: 경국대전을 통해서 법체계를 잡았다.
: 삼강행실도를 통해 백성들의 미풍양속과 규율을 다스렸다. (남성 우의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2. 교육기관 : 성균관과 서원
#. 성균관, 4부학당, 향교는 공립학교로 생각하면 된다.
-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을 말한다.
: 참고로 고려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은 국자감이다.
- 성균관은 미래의 관리가될 어린 선비들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현재로 비유하자면 국립 서울대학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 이곳은 교육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 성균관 입학 자격은 "소과"라는 과거 시험에 합격을 하는것입니다. 이후 성균관에서 "대과"라는 과거 시험을 준비합니다.
#. 향교는 중등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 지방 국립대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서원, 서당은 사립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 서원은 지방 사립대학교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 서원에서는 교육 뿐만아니라 제사와 향음주례까지 가르쳤다.
#.왼쪽의 그림은 서원의 일반적인 구도를 나타낸것이다.
: 사당과 강강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서재와 동재가 있다.
: 서재와 동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뜻한다. 이는 보통 대칭적인 구조로 지어졌다.
#. 최초의 서원은 중종 38년에 주세붕이 건립한 백운동 서원이다.
: 후에 임금의 현판을 받게되고 이름을 소수 서원이라고 바꾸었다.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된것이다.
: 백운동 서원은 이렇게 처음부터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것이 아니고 명종때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고 이에 이름을 소수 서원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 사액 서원이란 국가에서 현판과 노비, 토지, 서적등을 지원해주는 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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