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과 서원-조선전기의 문화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잠깐 오늘 알아볼 내용을 살펴 볼께요 

크게는 역사서의 종류와 편찬목적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교육 시설에는 어떤것이 있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 15세기에는 자주적이고 민족적인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 서울에는 성균관, 지방에는 서원과 향교가 교육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의 초최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전경입니다. 

조선전기의 문화(상편) 시작합니다 .


1. 15세기 vs 16세기

#. 역사서

: 일단 역사서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 고려사 

: 기전체로 기록되었다. cf) 기전체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처음 쓰였다. 

: 조선을 세우면서 앞의 시대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역성혁명을 통해 건국된 조선을 위한 정당성을 치켜세우기 위해 쓰여졌다.


- 동국통감 

: 고조선에서 ~ 고려까지의 기록이 적혀 있다. 자주적 민족적 성향을 나타내는 기록서이다. 

: 자주적 성향의 근거는 고조선, 즉 단군을 기록한데서 알수있다.

- 조선왕조실록 

: 시간의 순서대로 적은 편년체로 기술되어 져있다. 

: 춘추관에서 관리 감독하여 만들어 졌다.


#. 지리 부문

: 지리지의 편찬 목적은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 윤리 부문

: 경국대전을 통해서 법체계를 잡았다. 

: 삼강행실도를 통해 백성들의 미풍양속과 규율을 다스렸다. (남성 우의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2. 교육기관 : 성균관과 서원

#. 성균관, 4부학당, 향교는 공립학교로 생각하면 된다. 

-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을 말한다. 

: 참고로 고려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은 국자감이다. 

- 성균관은 미래의 관리가될 어린 선비들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현재로 비유하자면 국립 서울대학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 이곳은 교육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 성균관 입학 자격은 "소과"라는 과거 시험에 합격을 하는것입니다. 이후 성균관에서 "대과"라는 과거 시험을 준비합니다. 


#. 향교는 중등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 지방 국립대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서원, 서당은 사립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 서원은 지방 사립대학교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 서원에서는 교육 뿐만아니라 제사와 향음주례까지 가르쳤다.  


#.왼쪽의 그림은 서원의 일반적인 구도를 나타낸것이다. 

: 사당과 강강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서재와 동재가 있다.

: 서재와 동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뜻한다. 이는 보통 대칭적인 구조로 지어졌다. 


#. 최초의 서원은 중종 38년에 주세붕이 건립한 백운동 서원이다. 

: 후에 임금의 현판을 받게되고 이름을 소수 서원이라고 바꾸었다.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된것이다. 

: 백운동 서원은 이렇게 처음부터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것이 아니고 명종때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고 이에 이름을 소수 서원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 사액 서원이란 국가에서 현판과 노비, 토지, 서적등을 지원해주는 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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