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납의 폐단과 조선의 세금(조세 공납 역)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21장 조선의 경제 생활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배울내용을 간단히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0. 여기에서는 조선의 수취제도(즉 세금제도)와 그에 따른 폐단과 경제 활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공납이 무었이며 방납은 무었일까요? 또한 이로인한 폐단에는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2. 역 <<<----- 대립제와 방군수포제로 문란해지는 조선의 경제


왼쪽 첫번째 그림은 김득신의 "양반의 생활"이라는 작품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논갈이와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나타낸것이고 

세번째 그림은 등짐장수 즉 보부상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조선의 경제 생활에 관한 공부 시작합니다. 


1. 수취 제도(세금 제도)


#. 조세 : 15c 와는 달리 16c 에 이르러서는 관행적인 최저 세율을 적용하였다. --> 이는 대지주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  

※ 조세의 운반 : 조운을 이용하였다. 

(조창으로 경창으로 이동하였다. )

- 조창은 각 지역별 바닷가나 강가에 위치한 창고를 말한다. 경창은 서울의 창고를 말한다. 

잉류 지역 

: 평안도와 함경도는 조세미를 조창으로 운반하여 조정으로 옮기지 않았다. 군사비와 사신 접대비로 현지에서 자체 사용을 하였다. 


<조운과 잉류지역을 잘 살펴 보자>

평안도(사신접대)와 함경도(국경지역)이 잉류지역이다. 

그럼 제주도는? 아시는 분은 댓글로 적어주세요!! :)


#. 공납 : 방납의 폐단이 커지다.

방납 이란?


조선시대 백성을 대신하여 공물을 대납하고 이익을 붙여 받는 일로서 공납을 농민이 직접 내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공물의 종류와 수량은 국가에서 소요되는 것을 기준으로 책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 즉 하늘이 두쪽이 나는 일이 있어도 바꿔지는 일은 드물었다. 더욱이 그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토산물까지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산물을 구하기 힘들어진 그 지역 백성들은 돈을 모아 외지에 가서 그 공물을 사서 바치기 까지 하였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세금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상인 관원들이 도와주기는 커녕 기어들어 백성 대신 공물을 대납해주고 그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붙여서 착취하는 일까지 비일비재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런일을 당하기 싫어 직접 공물을 관가에 납부하려고 하여도 방납자와 악덕 관과의 공무원들이 결탁하여 관청에서 물품을 수납할때 그 규격을 검사하면서 불함격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패한 관리는 자신과 결탁한 방납업자가 내는 공물들만 합격처리 하였다. 어쩔수 없이 백성들은 이 방납업자를 통해서 몇배의 가격을 주고 공납을 낼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불합격시키고 다시 내게 하는 행위를 점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점퇴로 인해서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방납업자와 거래할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방납은 백성이 직접 납공하는 것을 방해 하였다. 하여 생긴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부정부패한 방법을 제 하고 나서라도 어려움은 여전히 많았다. 

예를 들어 방에서 직접 공납이 가능한 물품이라도 국가의 수요와 공납 시기가 맞지않아 진상하기 어려울때가 많았고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 수송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방납은 더욱더 활개를 쳤다. 


#. : 대립제와 방군수포제가 유행하였다. 

1). 역은 호적에 등제된 16세 이상의 정남(남자성인)에게 부과된 요역이다. 

(지금으로 치면 군대 // 대민지원 동원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능할 것이다)


2). 지금도 군대가는 것이 싫듯이 이때도 주기적으로 요역에 불려가는 것을 기피 하였다. 

그래서 대신 요역을 가주는 대립제와 노역대신 포납으로 내는 방군수포제가 유행하였다. 



군적

호적을 기반으로 만든 군역 동원 장부이다. 





2. 경제 활동

#. 농업기술 : 2년 3작 ( 조, 보리 , 콩의 돌려짓기)의 확산, 남부 일부지방은 모내기가 보급되었다. ---> 2모작(벼,보리)이 가능해져 생산력이 증대 하였다. 

- 시비법의 발달(거름), 목화의 재배가 일반화 되었다.


#. 상업 

: 시전 상업 --> 한양 종로 거리에 설치하여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상인업체, 후에 경시서를 두어 시전 상인들을 감시 // 감독 하였다. 


- 장시의 발달 --> 15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16세기 중엽에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다. 

: 보부상(등짐에 여러 물품을 싣고 팔도를 누비며 장사하는 무리)의 활동이 두드러 진다. 


#. 관영 수공업과 민영수공업의 발달, 소 수공업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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