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화의 우수성(상 上)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고려문화의 우수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적는 국사 포스팅입니다.

그 동안 게을렀던 제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그럼 서론은 최대한 짧게 하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 볼게요.

늘 그렇지만 문화 파트가 가장 햇갈리고 어렵다고 느끼게 됩니다.

단순 암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듯합니다. 사진 위주로 많은 문화재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옛날 이야기를 좀 더 알아가다 보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거에요.

   

이 건물은 개성에 있는 성균관 대학입니다.

   

1. 들어가기 앞서 알면 좋은 것들

   

1) 당부의 말

서론에서도 조금 언급했는데 문화 파트입니다.

각 고대 중세 근세 근 현대사 시대 별로 정치 부분을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 경제 파트, 사회파트, 문화파트를 배웁니다.

아무래도 각 시대의 마지막에 있다 보니,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고, 비슷한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어려운 생각이 왠지 드는 파트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정치파트 보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진을 위주로 눈에 잘 익히고, 그 사진 속에, 그 문화재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알아가다 보면 단순한 암기 파트라는 편견을 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배우는 부분은 고려문화의 우수성 중에서도 유학/고서/불교 파트입니다.

이론적인 부분이 제법 있으니 기존에 배운 정치 파트에 살을 붙인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편해요.

   

2) 중요 요약

- 해동공자 최충, 지방교육의 메카인 사학 12도의 중심이 된다.

- 김부식, 삼국사기를 완성시키다.

- 의천의 지식 우선의 교관겸수와 지눌의 실천의 정혜쌍수 --> 두 부류의 불교 종파가 주류가 되었다.

   

3) 오늘 배울 필기본

사실 위 사진만 보면 압박감이 몰려옵니다.

그냥 보기에는 어렵고 막막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파트 별로 때어서 보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2. 유학

1) 고려 전기는 최승로의 시무 28조

: 이 내용 안에는 연등회 팔관회 같은 불교행사가 백성에게 부담을 주니 줄이자는 건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고려 중기는 김부식과 최충이 유학을 이끌었습니다.

: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지었고 최충은 관학(쉽게 말해 국립대학)보다 사학(지방 사립 대학)을 이끌었다.

후에 최충의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관학보다 사학이 훨씬 유명하고 크게 발전했다.

(최충에게 배우는 것이 과거 급제에 더 좋았다.)

   

3) 고려 후기에는 성리학 기반의 신진 사대부가 세력을 넓혀 갔다.

(이 무리들이 후에 조선의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다.)

   

#. 함께 보면 좋은 네이버케스트 인물 열전의 최충입니다.

   

3. 불교

1) 태조 왕건 때는 불교를 권장했으나 후에 최승로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는 불교행사의 축소를 지적했지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 문벌 귀족시기에는 의천의 교관겸수 사상이 우위에 있게 된다.

- 교관겸수 : 교리를 우선으로 수행 하다 보면 번뜩 깨달음을 갖게 된다. 라는 교종 중심의 선종 통합의 불교 사상이었습니다.

   

3) 무신집권기는 지눌의 정혜쌍수, 돈오점수 사상이 우위를 차지합니다.

- 정혜쌍수 : 참선과 지혜를 같이 쌓아야 한다.

- 돈오점수 : 문득 깨달음이 있은 후에 점진적으로 교리 수행을 한다는 뜻으로 선종 중심의 교종 통합의 불교 사상입니다.

   

4) 지눌의 제자 혜심

: 유불일치설(유교와 불교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 관련 글

   

참고로 첫 사진인 성균관은 현재 서울에 있는 성균관이 아닙니다.

개성 성균과 따로 한양 성균관이 따로 있습니다.

고려 말에 신진사대부들이 이곳(개성 성균과)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조선 초에 한양에 성균관을 지으면서 개성의 성균관은 향교로 바뀌게 되었고, 이름을 그대로 성균관으로 내비둔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국보인걸로 알고 있고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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