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건국과 멸망 그리고 문화재 이야기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이번에는 남북국시대에 북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발해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언제나 발해를 공부할 때면 가슴이 벅차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발해 공부에 빠질 수 없는 발해의 지도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참 벅차 오릅니다.

   

오늘은 저번의 통일신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가지는 남북국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알아야 할 포인트만 적어봅니다 :)

남북국시대의 남쪽이었던 통일신라나 그전의 삼국시대에 관한 요약 글들은 제 국사 공부 카테고리를 참고해주시면 되요

   

1. 들어가기 앞서 오늘의 큰 흐름

- 발해는 근본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일본으로 보낸 국서에 "고려국왕"이라는 서두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문화와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온돌, 고분의 모줄임 천장, 돌사자상, 석등 등의 문화재,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 발해의 전성기 때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렸습니다.

- 이후 국력이 쇠퇴하여(거란의 성장과 귀족들의 분열)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학적으로 의견도 많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 그러나 발해를 말할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는 것이다.

   

위 지도는 교과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남북국 시대의 모습입니다.

넓은 영토의 발해를 볼 수 있어요.

   

   

2. 발해의 고구려 계승 근거

#. 발해의 고구려 계승 증거

- 정치면에서는 국서에 고려 국왕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 사회구조

: 지배층은 고구려인(발해인), 피지배층은 말갈민족입니다.

   

- 각종 문화재 유물에서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위 그림은 발해의 상경 용천부 지역에 있었던 주작대로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이는 발해가 당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증거가 되는 중요한 그림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영향뿐만 아니라, 당의 영향도 많이 받고, 문화적으로 흡수를 한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어요.

이는 중요한 사항이라서 한국사 시험에도 종종 출제되는 영역 중 하나이니 꼭 알아두도록 합시다.

 

 

   

3. 발해의 건국과 멸망으로 알아보는 발전 과정

- 발해의 건국

: 고구려 출신의 장군인 대조영이 고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모아서 길림성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 남북국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발해의 무왕

: 왕명 그대로 무의 왕입니다. (쉽게 정복 왕이라고 생각을 합시다.)

: 요서와 산둥 지역을 공격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 문왕

: 왕명 그대로 문()의 왕입니다. 문화와 문물 쪽으로 많은 업적을 이룬 왕입니다.

: 당의 문물을 수용하고 신라와의 대립관계 또한 느슨하게 해소를 시켰습니다. 신라도를 개통하였습니다.

   

4. 발해의 문화재

발해의 이불병좌상이다.

이불 : 두 개의 불상

병좌상 : 앉아있는 불상 이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한문을 풀어서 외우면 좀더 쉽게 문화재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두 개의 불상 중에서 한쪽의 얼굴 부분이 깨진 것이 특징이자,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발해의 석등이다.

발해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상경에서 발견된 절 안의 석등입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것이 재질적인 특징이며, 석등의 기둥 위 아래로 연꽃무늬가 있는 것이 조각 상의 특징입니다.

사진으로는 감이 잘 안 올 수 있지만 석등의 길이만 해도 6m나 되는 아주 큰 석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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