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의 모습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남북국시대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면서 우리나라의 고대 삼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신라는 힘들게 삼국을 통일했지만 세 나라의 모든 영토를 가지고 통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아쉽지만 대동강 이남의 땅들만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처 차지 하지 못한 옛 고구려의 땅에는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발해라는 나라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새로운 나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고대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남북국시대가 시작이 됩니다.

   

위 사진은 발해가 융성했을 때의 대외관계를 보여주는 지도 입니다.

생각보다 중요하니 잘 봐두세요. 거란으로 당으로, 그리고 일본으로도 그 영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발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고 오늘은 남국인 신라에 집중을 해서 알아볼게요)

   

#. 남북국 시대의 통일 신라

: 들어가기 앞서 오늘의 큰 흐름 이야기

   

- 신문왕

: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 통일신라는 9주 5소경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국학 설립, 이건 유학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 신라의 하대쯤에 이르러서는 중앙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심해지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신라가 됩니다.

- 호족(지방세력)세력들이 점점 성장하며 결국은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 이후 고려가 왕건에 의해서 건국됩니다.

   

 

1. 통일신라의 시대구분

위의 그래프는 신라초기인 내물왕부터 해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의 흥망성쇠를 그래프 높이로 표시해본 것입니다. 점점 그래프가 올라가다가, 통일 이후 신문왕 때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 점점 내리막을 걷는걸 알 수 있어요.

 

   

   

-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계열을 알자.

: 성골이 왕이 되던 신라에서 최초로 진골 출신의 왕이 나타난 게 태종 무열왕이다.

: 이후 아들인 문무왕이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고 왕권을 잡았으며

: 신문왕으로 이어지는 직계자손의 계보까지 쭉 알아두자.

   

 

 

2. 통일신라의 지방행정 조직

   

위의 사진은 9주 5소경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에서 금관경 // 서원경 // 중원경은 시험에 자주 나오니까 잘 알아둡시다.

   

1. 금관경은 김해와 가야와 연관되어서 지역적 질문이 나오고

2. 서원경은 현재의 청주로 민정 문서와 직지심체요절(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흥덕사에 위치 함)과 연결 돼서 나온다.

3. 중원경은 충주지역을 말하며, 고구려 장수왕의 중원 고구려 비와 연결이 돼서 나옵니다.

   

   

   

신라의 신분구조인 골품제입니다.

골품제에 따라 위 그림처럼 여러 신분으로 구분돼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신분에 따라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직급이 제한되었으며(ex: 넌 4두품이니 하사는 못해, 병장까지만 진급할 수 있어), 집의 크기도, 옷의 색깔, 장신구까지도 차별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라의 골품제는 통일신라 말 6두품들의 불만을 불러오게 되고 신라를 멸망하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되었어요

   

   

   

- 안압지(월지와 동궁)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 그 대업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통일 직후인 문무왕 1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미터 지점에 만들어졌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들은 나라의 큰 일들이 있을 때나, 멀리서 온 사신 등의 접대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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