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과 지눌의 불교통합 - 중세의 문화(상)

안녕하세요 초코 팡팡입니다. 


들어가기 앞서 미리 살펴보기 


1. 당부의 말


문화 파트 입니다. 어찌보면 정치 파트 보다 더 중요한 파트라고 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진 위주로 눈에 잘익히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문화파트의 배움에서 정도는 사진과 그림을 많이 보고 익히는것 뿐입니다. 

답사를 간다면 가장 좋겠지요 


오늘은 유학/고서/불교 파트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론적 부분도 더러 있으니 기본 정치 파트에 살을 붙인다는 생각으로 잘따라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오늘의 요약


 #. 해동공자 최충, 지방 교육의 메카인 사학 12도의 중심이 되다. 

 #. 김부식, 삼국사기를 완성하다.

 #. 의천의 지식 우선인 교관 겸수와 지눌의 실천 중심의 정혜쌍수 

--> 두 부류의 불교 종파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개성의 성균관의 모습입니다. 서울에 있는 성균관이랑은 다른 곳입니다. 


16강 중세의 문화(상)



일단 좀 웃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위의 자료만 보면 상당한 압박감이 올수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 말고 

하나하나 뜯어서 보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

그럼 천천히 하나하나 살펴 보겠습니다. 




1.유학



#.고려 전기는 최승로의 시무 28조

: 이 내용 안에는 연등회 팔관회 같은 불교행사가 백성에게 부담을 주니 줄이자는 건의가 포함되어 있다.


#. 고려 중기는 김부식과 최충이 유학을 이끌었다. 

: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지었고 최충은 관학(쉽게 말해서 국립 대학)보다 사학(지방사립대학)을 이끌었다.

최충의 명성이 자자해져서 관학보다 사학이 훨씬 유명하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최충에게 배우는것이 과거 합격률이 더 높았다.)


#. 고려 후기는 성리학 기반의 신진 사대부가 세력을 넓혀 갔다.(이 무리들이 후에 조선의 건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팔관회의 상상도 이다. 

이것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팔관회에 많은 자본이 들어갔기때문에 축소 건의가 나오게 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없어지게 된다.



#. 참고자료


네이버케스트에 인물열전 최충입니다. 

참고자료로 보시는것도 좋을것 같아 이렇게 링크 해봅니다. 








2. 불교



#. 태조 왕권때는 불교를 권장했으나 최승로에 의해 비판 받게 된다.(불교 행사 자체의 축소를 권장했지 존재 부정은 아니었다.)


#. 문벌 귀족시기에는 의천의 교관겸수 사상이 우위에 있게된다. 

교관겸수 = 교리를 우선으로 수행을 겸하다 보면 문득 깨달음을 알게 된다는 말 --> 교종 중심으로 선종의 통합을 가져온다. 


#. 무신집권기에는 지눌의 정혜쌍수,돈오점수 사상이 우위를 차지한다. 

정혜쌍수 = 참선과 지혜를 같이 쌓아야 한다. 돈오점수 문득 깨달음이 있은후 점진적으로 교리 수행을 한다. 라는 뜻이다. 

-----> 선종 중심의 교종 통합의 불교 사상이다. 


#. 지눌의 제자 혜심 --> 유불일치설(유교와 불교가 크게 다른것이 아니다.)





3. 그외 부가 자료 


댓글중에 나름 중요하게 적은 댓글이 있어서 이렇게 가져 와봅니다. 

고려말에 신진사대부들이 이곳 (개성 성균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조선초에 한양에 성균관을 새로 짓게 됩니다. 

그후에 개성에 위치한 성균관은 향교로 바뀌게 되었고 이름은 그대로 성균관으로 두었습니다. 


지금은 북한의 국부중하나로 알고 잇습니다. 박물관으로도 쓰이는 중입니다. 


그럼 다음시간에 고려의 문화(하)편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