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붕당 - 조선후기의 문화(상) 호락논쟁
- 한국의 역사/근세
- 2016. 3. 28. 22:30
안녕하세요 초코팡팡입니다.
오늘은 조선후기의 마지막 파트인 문화파트를 배워보겠습니다.
조선후기의 문화파트는 범위도 넓을뿐더러 통합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 단연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인 성리학의 계파와 붕당정치의 구도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범위는 포스팅 1개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의 그림으로 대체를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중요 사건들을 하나 하나 잘 알아두시고,
잘 기억이 안 나는 사건들은 따로 한번씩 찾아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붕당이 형성되고 갈라지는데 중요한 사건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상당히 큰 그림입니다. 그래도 붕당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그림이니 잘 보도록 합시다.
1. 조선후기의 문화(상)
: 들어가기 전에 알면 좋은 것들
- 16세기 이이와 이황의 이기 논쟁으로 시작해서
- 17세기에는 예송논쟁이 주요 쟁점이었으며
- 18세기에는 호낙논쟁으로 호론과 낙론으로 나누어져 쟁쟁을 벌렸습니다.
- 성리학의 절대화
: 서인이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 해결을 위해 명분론을 강화, 송시열 중심으로 뭉치게 됩니다.
- 성리학의 상대화
1) 6경과 제자백가 등에서 사회 모순 해결의 사상적 기반을 찾게 됩니다.
2) 윤휴 : 서경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교 경전에 대한 주자와의 다른 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3) 박세당 : 양명학과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기 시작함
2. 붕당과 학파
1) 이기론 논쟁 : 이황의 학파와 이이의 학파 간에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2) 호락논쟁 : 18세기에 펼쳐진 심성론에 관한 노론 중심의 논쟁을 말한다.
- 충청도 충주의 호론
: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 후에 위정척사파로 연결이 된다.
- 서울의 낙론
: 인성과 물성은 같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 이후 북학파, 개화파로 그 의지가 계승된다.
3) 양명학의 발달
: 성리학의 형식화와 교조화를 비판하면서 대두되기 시작함
--> 지행합일의 실천성을 강조함 ---> 이를 받아 들인 강화학파
(정제두를 필두로 해서, 양반 신분제의 폐지를 주장 --> 근대 시기 국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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